박승건은 남자 디자이너이지만 여성들이 열광하는 낭만주의를 이해한다.
풍성한 어깨선이 돋보이는 푸른 줄무늬 패딩 점퍼가 그 시작이다. ‘푸시버튼’ 하면 떠오르는 반복적이고 장식적인 패턴의 베이지색 코트에 노란 형광 벨벳 원피스와 심드렁한 펠트 모자를 결합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증거다.
허리선이 쏙 들어간 소매가 둥근 녹색 울 재킷이나, 반세기 전 이미 전설이 된 패션 디자이너들을 향한 헌사로 느껴진 분홍빛 치마 슈트는 따분한 일상과 분리된 하루를 보내고 싶을 때 제격이다.
이는 곧 고전적인 패션과 소위 ‘도시 스트리트웨어’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이제 푸시버튼의 중요한 축을 차지하는 남성복 레시피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빈티지 가공한 청바지를 툭 잘라내고 그 위에 작업복를 떠오르게 하는 반바지를 모양에 맞춰 덧댄 후 헨리넥 상의에 소매만큼은 치렁치렁한 플란넬 체크무늬를 쓴다. 심심하다고? 그 위에 걸친 은색 패딩 베스트를 보면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우아하고 거친 느낌이 공존하는 긴소매 흰 셔츠 위에 불투명한 푸른색 체크무늬 반소매 셔츠를 겹치고 울 양말과 가공하지 않은 청바지를 한 단 접어 입는 것 또한 그대로 입고 싶어진다.
새파란 후드 재킷 위에 헐렁한 회색 니트를 입고 당연히 야구 모자도 하나 쓰고 걸을 때마다 종아리가 드러나는 줄무늬 치마를 입은 룩은 개인적으로 필자가 꼽은 베스트 룩이다. 그녀가 든 파란 가죽 가방을 포함해 길거리 어디선가 마주쳤을 법도 하다.
하지만 오랜만에 ‘어떤 옷을 입을까’ 하는 즐거움이 박승건의 컬렉션에 보였다. 진지하고 예술적인 패션이 아니라 생활에 밀착한 진짜 사람들의 옷장 그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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