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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순환의 순환계, ‘가로수길’은 지금 위험하다

ⓒ 가로수길, 에잇세컨즈
ⓒ 가로수길, 에잇세컨즈

패션, 문화, 예술의 거리 ‘가로수길’이 변하고 있다.

가로수길은 서울특별시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압구정로 12길과 도산대로 13길을 말한다. 도로 양옆으로 160여 그루의 은행나무가 줄지어 있어 ‘가로수길’이란 명칭이 붙었다. 이곳은 인위적으로 조성된 공간이 아닌 갤러리와 패션, 디자인 관련 시설이 유입되면서 자생적으로 성장한 상업 공간이다.

가로수길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갤러리, 화방, 신진 디자이너들의 특색 있는 매장들이 한데 모여있는 소호의 거리였다. 천편일률적인 문화 형태에서 벗어나 자신의 감성에 충실할 수 있는 젊은이들의 ‘아지트’로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악순환의 순환계, ‘가로수길’은 지금 위험하다 | 1
ⓒ 패션서울

2000년대 후반쯤부터는 패션 상권을 전두지휘하던 압구정 로데오 거리가 침체되면서 가로수길이 새로운 ‘핫 플레이스’로 떠올랐다. 그 후 가로수길에는 기존 강남 상권의 소비자를 비롯한 외국인 관광객, 다른 지역의 인구 등이 대거 유입되면서 대형 상권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현재의 가로수길은 최근 5년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거대한 자본력을 앞세운 대기업들이 대형 매장을 잇따라 오픈하면서 과거에 아기자기한 분위기, 이국풍 정취, 개인이 운영하는 작은 매장, 디자이너들의 실험적인 공간들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10년 전부터 가로수길을 즐겨 찾은 송수호(21), 박소영(21) 씨는 “과거 가로수길은 독특한 매장들이 즐비한 거리였다. 그러나 최근에 대형 매장들이 많이 생겨나면서 특색 있던 가로수길이 획일화되고 있다”라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이어 “과거 가로수길은 아기자기한 분위기의 거리였다면 지금은 대기업 브랜드들의 매장으로 가득한 ‘백화점’과 다를 바 없어졌다”라고 말했다.

가로수길을 찾은 이영현(26) 씨는 “가로수길은 올 때마다 새로운 브랜드 매장들이 들어와 있다”라며 “심지어 그 매장들의 분위기도 하나같이 다 비슷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가로수길 특유의 독특한 매리트가 사라져 이곳을 찾을 이유가 점점 없어지고 있다”라고 솔직한 심경을 털어놨다.

그렇다면 대기업들은 왜 ‘가로수길’을 선택했을까? 편리한 교통 환경으로 유동 인구가 많을 뿐만 아니라 트렌드를 가장 빠르게 접할 수 있는 강남에 위치한 점이 첫 번째 이유다. 또한 최근에는 케이팝(K-POP), 케이패션(K-Fashion) 등 한류 열풍 바람이 거세지면서 가로수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부쩍 늘어난 것도 또 하나의 이유로 꼽힌다.

ⓒ 패션서울
ⓒ 패션서울

실제로 가로수길에는 제일모직의 에잇세컨즈(8seconds), 인디텍스의 마시모두띠(Massimo Dutti)를 필두로 빈폴(BEANPOLE), 에이랜드(ALAND), 원더플레이스(WONDERPLACE), 타미힐피거(TOMMY HILFIGER), 게스(GUESS), 엠씨엠(MCM), 망고(MANGO)등 대기업들의 브랜드 매장이 넘쳐나고 있다.

ⓒ 더베이직하우스, 아디다스
ⓒ 더베이직하우스, 아디다스

이처럼 대기업들의 공격적인 매장 확대에 가로수길 일대 주요 매장의 권리금과 월세, 임대료가 무서운 속도로 치솟고 있다. 현재 가로수길 월 임대료는 면적 33m2(10평) 기준 2700만~5200만 원으로 지난 2010년 310만~600만 원보다 무려 8배가량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가로수길의 터줏대감이었던 소상공인들은 폭등한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거대 자본의 그림자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아예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거나 일명 ‘세로수길’로 불리는 가로수길 외곽으로 밀려나게 된 것이다.

ⓒ 패션서울
ⓒ 패션서울

가로수길에 위치한 103 매장 관계자는 “4~5년 전과 비교했을 때 현재 가로수길은 대기업 매장과 외국인 관광객이 몰려 있는 명동과 다를 바 없는 분위기다”라며 “기존에 있던 주변 상인들은 대기업 공세에 이겨내지 못하고 아예 가게 문을 닫거나, 다른 지역으로 떠나가고 있다”라며 아쉬운 마음을 전했다.

가방 편집숍 모던밥상 관계자는 “우리처럼 개인이 운영하는 작은 매장들은 대기업들이 펼치는 다양한 마케팅에 따로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다”라며 “매출이 대폭 하락했지만 어쩔 수 없이 버티고 있는 실정이다”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 엠씨엠
ⓒ 엠씨엠

이러한 가로수길의 현재 상황은 서울의 주요 상권으로 군림해왔던 압구정 로데오 거리와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과거 압구정 로데오 거리는 ‘오렌지족’으로 대변되던 패션의 거리로서 명성을 떨쳤다. 그러나 대기업 브랜드 매장, 명품관, 럭셔리 브랜드, 각종 프랜차이즈 음식점과 카페 등이 유입되면서 대형 상권으로 진화했다. 때문에 본연의 정취를 풍기던 압구정 로데오 거리는 ‘대기업 홍보관’으로 전락해버린 바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신선하고 독특한 향기를 찾는 젊은 소비자들은 압구정 로데오 거리가 아닌 가로수길로 발길을 돌렸다. 현재 압구정 로데오 거리에는 대기업 매장들이 입점했던 건물들을 중심으로 전체 층이 텅 빈 곳을 흔하게 발견할 수 있다.

머지않아 가로수길도 압구정 로데오 거리와 같은 길을 밟게 될까 우려된다. 지금은 다양한 대기업 브랜드 매장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시선에 사로잡혀 무감각해 있지만, 곧 우리는 새롭고 신선하고, 우리의 오감을 자극해줄 무엇인가를 다시 갈망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곳에서 패션, 문화, 예술의 둥지를 틀고, 또 그곳은 대기업들이 가득한 상업 공간으로 변모할지도 모른다. 악순환의 순환계인 셈이다.

뉴욕에 위치한 소호(SOHO, South of Houston)는 젊은 예술가들과 뉴욕 패션 피플들의 생동감 넘치는 패션의 거리로 유명하다. 이곳에서는 세계적인 럭셔리 브랜드와 신진 디자이너들의 매장, 아티스트들의 갤러리가 함께 공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거리 전체가 마치 하나의 그림인 듯한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이처럼 우리도 가로수길이 더 이상 획일화된 ‘대기업 홍보관’이 아닌 서로 상생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시급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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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나

리그 오브 레전드를 즐기는 패션 에디터(__*) 1:1 신청 환영 press@fashion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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