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FEATURED

미래의 럭셔리란 무엇인가

패션계에서 명품(名品)과 동의어로 인식되고 있는 ‘럭셔리(Luxury)’의 정의가 변하고 있다.

현재 패션계는 빅데이터, 인공지능, VR 등 첨단 IT 기술 혁명이 초래한 라이프스타일의 변화, 소셜 미디어(SNS)의 출현, 밀레니얼 세대(Millennials Generation)의 가치 중심 소비, 전 세계 사치품 46% 소비량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인 관광객의 부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누구도 미래의 럭셔리를 정확히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한마디로 ‘혼돈의 카오스’다. 지난 20일, 21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렸던 <컨데나스트 인터내셔널 럭셔리 컨퍼런스>의 주제가 ‘미래의 럭셔리’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내에서 ‘럭셔리’라는 단어가 일상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건 1990년대 중반이다. 당시 럭셔리는 고가의 수입 자동차를 수식하는 단어로 쓰였다. 패션계에서 ‘럭셔리’가 처음 등장한 건 1999년 가을부터다. 이전까지는 해외 유명 브랜드 등으로 부르던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를 ‘명품’으로 지칭하기 시작한 때와 일치한다. 당시 해외 유명 브랜드들은 과소비의 주범이자 부유층의 부도덕함을 드러내는 상징으로 비판을 받았다. 「명품 판타지」에서는 “물건 가치에 비해서 돈을 너무 많이 쓴다고 비난하는 말인 ‘사치스럽다’가 원래의 뜻 대신 최고의 기술로 잘 만들었기 때문에, 혹은 내 취향에 잘 맞아서 산다는 느낌을 주는 ‘명품’이라는 단어와 통용되고 있다. 이는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들이 대중들의 판타지를 부추기는 마케팅 덕분이다”고 지적한다.

영국 핸드백 디자이너 안야 힌드마치(Anya Hindmarch)는 <컨데나스트 인터내셔널 럭셔리 컨퍼런스>에서 “본래 패션은 자신의 지위를 보여주는 게 아닌 개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현재의 패션은 배타적인 것(Exclusive)에서 포용적인 것(Inclusive)으로, 또 민주적이고 대중적인 것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말했다.

윔 페이브스(Wim Pijbes) 레이크스 박물관(Rijksmuseum) 관장 역시 “소수 상류층과 엘리트의 전유물로서의 럭셔리는 끝났다”고 역설했다. 이어 그는 “이제 길거리 어디에서나 럭셔리를 발견할 수 있다. 누구에게나 공급된다는 것이다. 대중화된 럭셔리의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할 때다. 럭셔리는 ‘소유’에서 ‘존재’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고 ‘공유’는 새로운 개념의 ‘소유’가 되고 있다. 세상에 나 혼자만 가질 수 있는 럭셔리란 건 이제 없다. 원하는 사람이 원하는 방식으로 럭셔리를 즐기는 경험,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자유, ‘오직 나만’이라는 독자적인 존재를 표현할 수 있어야 진정한 럭셔리다”고 말했다.

에바 첸(Eva Chen) 인스타그램 패션 파트너십 총괄 역시 ‘럭셔리의 민주주의’에 대해 언급했다. 그녀는 “럭셔리의 미래는 민주주의에 있다. 모든 사람을 연결하고 소비자와 직접 소통해야 한다. 지금까지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들은 소셜 미디어를 멀리해 왔지만 이제는 전혀 다른 세상이 도래했음을 직시해야 한다. 사회적 논란이나 비판이 제기될 때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던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 혹은 ‘너는 나를 가질 수 없다’는 독선적인 태도는 이제 패션계에서 영리한 전략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올리비에 루스탱(Olivier Rousteing) 발망(Balmain)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대중들과 민주적인 소통을 통해 새로운 전략을 모색한 모범사례로 <컨데나스트 인터내셔널 럭셔리 컨퍼런스>에 초대됐다. 지난해 글로벌 SPA 브랜드 H&M과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발망 대란’을 일으켰던 올리이베 루스탱은 골드(Gold)와 글램(Glam)이라는 코드로 혁신적인 디자인을 선보이는 인물이다. 그는 현재 290만 명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를 보유 중이며 이들과 자신의 디자인에 대해 진솔하게 소통해오고 있다. 그는 “발망의 제품을 살 여유가 안 되는 사람들을 인스타그램으로 초대해 발망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처음에는 ‘왜 모든 사람들을 럭셔리의 세계로 끌어들이냐’는 비판도 받았지만 이제는 사람들이 내 직업을 이해해준다. 나는 고아원 출신이고, 입양아로 자랐으며, 흑인이다.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것이 내 현실이고 꿈은 이뤄질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거다. 우리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믿도록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크리스토퍼 베일리(Christopher Bailey) 버버리 CEO가 비즈니스 디지털 혁신을 주도하며 새로운 포지셔닝을 감행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그는 지난 2009년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 최초로 소셜 미디어를 통해 패션쇼를 생중계했다. 현재 버버리(BURBERRY)는 페이스북, 카카오톡, 라인, 구글, 애플 등과 다양한 파트너십을 유지하고 있다. 아직은 시작에 불과하지만 추후에는 어떻게 디지털 혁신을 하는가에 따라 이들의 승패가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패션과 IT의 융합은 가장 치열하게 연구해야 하는 숙제다.

소피 핵포트(Sophie Hackford) 와이어드 컨설팅 디렉터는 비즈니스 자체를 디지털화 할 필요가 있다며 VR(가상현실)에 주목할 것도 강조했다. 그는 “오늘날 아이들은 가상현실이 모국이다. 조만간 가상현실은 인간 상호작용을 훨씬 더 현실감 있게 대체하게 될 것이다. 가상현실의 시대에 우리는 매장에서 직접 옷을 갈아입지 않아도 되고, 옷걸이를 뒤적거릴 필요도 없다. 우리 모두는 전에 해본 적 없는 방식으로 기계와 얽히고 있다.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기술의 부족이 아니라 그 기술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상상력 부족이다”고 말했다.

중국이라는 시장도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블링 다이너스티(The Bling Dynasty)」의 저자이자 금융그룹 HSBC 애널리스트인 어원 램보그(Erwan Rambourg)는 “지난해 중국인들이 전 세계 사치품 매출의 44%를 차지했다. 10년 후엔 절반 이상을 차지하게 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지안 자코모 페라리스(Gian Giacomo Ferraris) 베르사체 CEO는 “베르사체(Versace)는 아시아 시장에서 5년 연속 10% 이상 성장률을 보였으며 중국은 전체 매출의 16%를 차지한다. 올해 9월에는 홍콩에서 아시아 최대 규모의 매장을 오픈할 예정이며 상하이에서도 플래그십 스토어를 진행할 계획이다. 중국 시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수지 멘키스(Suzy Menkes)는 “도시마다 매장을 여는 게 올바른 방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난 몇 년 동안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들이 한해 평균 25개 매장을 오픈했지만 프라다(PRADA)를 비롯해 적지 않은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들이 매장 문을 닫았다. 이제는 어떤 매장이 실패하고 성공하는지 차근차근 원인을 분석할 때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들은 중국 소비자들을 사로잡기 위해 자신들의 아이덴티티를 버리고 용 무늬가 수놓아진 블라우스, 다이아몬드가 촘촘하게 박힌 시계 등 ‘중국스러운’ 디자인을 앞다퉈 내놨었다. 어원 램보그는 “중국 소비자들은 ‘중국스러운’ 것을 싫어한다. 파리에서 파리 사람들이 쓰는 덜 화려한 디자인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까르띠에(Cartier)가 다이아몬드는 다 떼버린 심플한 디자인의 시계를 선보인 것도 이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샤넬(CHANEL) 역시 정책을 바꿔 누구에게 물건을 파는지 정확히 파악해나가기 시작했다. 중국 소비자들의 평균 연령은 유럽보다 15세, 미국보다는 20세나 젊다. 이들의 취향은 매우 다양하다. 예를 들면 스마트폰에서 손을 떼지 않는 젊은이들에게는 핸드백보다 백팩이 인기가 많다. 이제는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들이 슈퍼-하이엔드가 될 필요성이 없어진 것이다”고 강조했다.

국내 시장에서 중국이 미치는 영향력도 어마어마하다. <컨데나스트 인터내셔널 럭셔리 컨퍼런스>에서 한국 면세 시장을 주제로 발표를 한 맥킨지 파트너의 에이미 킴(Aimee Kim)은 “지난 2년 동안 세계 주요 면세점에서 고가 브랜드 매출이 30% 이상 증가했으며 이는 온라인 시장 매출보다 더 빠른 속도로 성장한 것이다. 국내 면세 시장은 2014년 기준으로 78억 달러(8조 9,000억 원) 규모에 이르며 중국(50억 달러)이나 미국(38억 달러)보다 훨씬 크다”고 밝혔다.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중국인 관광객 수를 고려했을 때 국내 면세 시장의 성장 가능성은 무한대라고 봐도 무방하다. 2014년의 경우 롯데면세점에서 물건을 산 소비자는 한국인이 20%인 반면 중국인은 70%를 차지했다.

현재의 ‘럭셔리’가 과거의 ‘럭셔리’와 다르다는 것은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소비자들 또한 ‘사치’가 아닌 ‘가치’를 중시한다. 럭셔리의 민주주의, 매스티지(Masstige), 패션과 IT의 융합 등 어떤 수식어를 붙이든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의 단 하나의 목적은 이윤 창출이다. 그래서 일까. 내년 봄에 진행되는 <컨데나스트 인터내셔널 럭셔리 컨퍼런스>의 개최지는 중동의 오만(Oman)이다. 중동의 금융 중심지로 돈이 몰려들고 있는 두바이(Dubai)에서 약 한 시간 거리다.

38 Likes
0 Shares
0 Comments
Tags

구하나

리그 오브 레전드를 즐기는 패션 에디터(__*) 1:1 신청 환영 press@fashionseoul.com

Related Articles

Back to top button
Close

Adblock Detected

Please consider supporting us by disabling your ad bloc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