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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호 디자이너 인터뷰] 소윙바운더리스, 바느질로 패션의 경계를 잇다

[하동호 디자이너 인터뷰] 소윙바운더리스, 바느질로 패션의 경계를 잇다 | 1
Sewing Boundaries 하동호 디자이너

2015년 을미년, 패션계를 뜨겁게 달군 신진 디자이너를 꼽으라면 단연 ‘하동호’다. 그는 지난 10월 서울패션위크가 아닌 건대 커먼그라운드에서 단독 패션쇼를 진행했다. 이미 다수의 디자이너가 독자적인 패션쇼를 통해 여러 번의 고배를 마신 바가 있어 주변의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의지는 확고했다. 패션쇼의 꽃인 의상부터 모델 섭외, 무대 기획, 조명, 음악까지 어느 것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하동호의 쇼를 접한 이들은 지금까지 숨겨둔 저력이 환한 햇살처럼 피어 오르는 듯 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남다른 재능을 지닌 하동호는 마치 숙명처럼 패션계에 입문했을 것 같지만, 사실은 우연한 계기에서 비롯됐다. 그는 계명문화대학에서 섬유를 공부하던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여느 20대 청년처럼 휴학계를 내고 군대도 다녀왔다. 그리고 그는 군대 전역 후 복학을 준비하던 중 뜻밖의 소식을 접하게 된다. 자신이 다니던 과가 패션디자인과와 통합이 됐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동호는 운명의 장난(?)처럼 패션계로 들어서게 됐다.

그는 대학교 졸업 후 동대문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후 약 3년 동안 패션을 향한 열정을 불태웠다. 그러다 어느 날 인생의 조력자를 만나게 된다. 바로 서은길 디자이너다. 하동호는 서은길의 길 옴므(GIL HOMME)에서 서브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패션쇼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그때 당시를 회상하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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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wing Boundaries 하동호 디자이너

“패션 디자이너들이 왜 쇼를 하는지 알게 됐어요. 모든 것을 마치고 난 후 느껴지는 ‘희열’이 엄청나더라고요. 그때 꿈이 생겼던 것 같아요. 나만의 쇼를 해보고 싶다는…”

길 옴므 서브 디자이너부터 강동준 디자이너의 세컨드 브랜드 디바이디(DBYD)까지, 그는 패션계 저명한 인물들에게 기술을 전수받으며 꽃피울 날을 학수고대했다.

“서은길 선생님과 강동준 실장님의 성향은 확연히 달라요. 서은길 선생님은 부티크 개념을 가지고 계시죠. 이곳에서 패턴부터 시작해 봉제, 워싱, 소재 개발까지 전반적인 기술을 터득할 수 있었어요. 강동준 실장님은 지금의 디자이너 시스템을 만든 시초의 개념이라고 할까요? 디바이비를 통해 디자인과 컬러를 상업적으로 바라보는 눈을 얻었죠”

패션계에 입문한지 9년째가 되던 해인 2013년, 하동호는 수년 전 패션쇼에서 느낀 ‘희열’을 다시 한번 맛보고자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그만의 소신을 담은 ‘소윙바운더리스’와 함께 말이다. 기나긴 꽃봉오리 시절을 거쳐 마침내 꽃을 피운 하동호 디자이너, 그의 못 다한 이야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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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소윙바운더리스’는 어떤 브랜드인가요?

소윙바운더리스는 여성복과 남성복의 경계가 허물어진 *젠더리스(genderless)의 연장선이자,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 나아가 노년층과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유니섹스 브랜드에요.

*젠더리스: 성과 나이의 파괴를 주 특성으로 하는 패션의 새로운 경향.

Q ‘소윙바운더리스’는 무슨 뜻인가요?

소윙바운더리스는 ‘바느질(Sewing)로 경계(Boundaries)를 잇는다’라는 뜻이에요. 평소에 추구하는 철학과 일맥상통하는 단어죠.

사실 ‘소윙바운더리스’는 지인에게 선물 받은 「런던의 디자인 산책」을 읽던 중 소제목에서 발견한 단어에요. 이 단어를 보자마자 가슴 속에 울림이 느껴졌었죠. 다른 단어도 찾아보려고 노력했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이미 마음 속에서 결정이 내려진 상태였나 봐요. (웃음)

Q 한마디로 ‘경계를 잇는 옷’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은 거네요?

그렇죠. (웃음) 과거에 비해 현재는 옷에 대한 구분이 모호해진 편이라고 생각해요. 이를테면 건장한 청년들이 할아버지의 옷을 빈티지라는 명목하에 입는다거나, 혹은 할아버지가 젊은이들의 옷을 입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시대가 됐다는 거죠. 이렇게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에서 적응할 수 있는, 그런 옷을 만들고 싶어요.

Q 주로 디자인 영감은 어디에서 어떻게 얻나요?

지금까지 선보였던 컬렉션들은 ‘내가 좋아하는 것’, 그리고 ‘나의 옛 기억’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물론 추상적이거나 철학적인 요소를 가지고 표현할 수도 있죠. 하지만 이건 굳이 제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아직까지는 제가 가장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고 싶거든요.

Q 자신만의 디자인 철학이 있다면?

저는 옷을 만들기 전에 스토리를 먼저 만들어요. 그리고 그것을 디테일로 형상화해 디자인에 투영하는 것을 좋아하죠. 이런 과정을 통해 옷을 만든다면 소비자들에게 보다 큰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해요. 또 저만의 색깔을 나타낼 수도 있고요.

Sewing Boundaries 2014 S/S COLLECTION
Sewing Boundaries 2014 S/S COLLECTION

2014 S/S 컬렉션에서는 비 오는 날, 한 남자가 사랑하는 여인에게 고백하러 가는 과정을 그렸었어요. 그때 당시에 빗방울을 세로 스트라이프로 표현하거나, 시즌 로고 속에 우산을 들고 있는 남자의 모습을 구현해 구상적인 스토리를 전했었죠.

Q 그렇다면 2016 S/S 컬렉션에는 어떤 스토리가 담겨 있나요?

제가 초등학교 때 보이스카우트 제복을 입은 금발의 소년을 보고 충격에 빠졌던 적이 있었어요. 그 어린 시절의 희미한 기억을 바탕으로 ‘보이스카우트’에 대한 동경과 갈망의 스토리를 만들었죠. 마치 보이스카우트 제복을 연상케 하는 디자인과 스카프, 마크, 와펜 등 특유의 요소를 디테일로 활용했어요. 누구에게나 순수했던 기억은 하나쯤 있잖아요. 그런 기억들을 되살려 주고 싶었어요.

Q 이번 컬렉션에서 특히 눈여겨봐야 될 것이 있다면?

Sewing Boundaries 2016 S/S COLLECTION
Sewing Boundaries 2016 S/S COLLECTION

이번 컬렉션에서는 시즌 로고 속에 ‘보이스카우트’에 대한 감정을 담았어요. 아람단이 보이스카우트를 잡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해 동경과 갈망, 그리고 부러움의 대상이라는 것을 나타냈죠.

Q 그러고 보니 패치워크가 굉장히 특이하네요?

Sewing Boundaries 2016 S/S COLLECTION
Sewing Boundaries 2016 S/S COLLECTION

패치워크로 사용된 벨크로 소재는 직접 개발한 거예요. 보통은 벨크로가 두꺼운 소재라 옷에 활용되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서 어떻게 풀어낼까 고민을 하다가 와펜들과 함께 붙일 수 있는 형태로 제작했죠.

Q 전체적인 실루엣은 개량 한복을 연상케 하네요. 이런 부분을 염두에 두고 만든 건가요?

네 맞아요. (웃음) 제가 소윙바운더리스를 론칭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바로 전통적인 아름다움이에요. 대부분의 옷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넉넉한 실루엣에 바지 밑단을 줄일 수 있거나, 니트나 티셔츠에 트임이 들어간 형태가 주를 이루죠. 이런 것들은 한복에서 영향을 받은 거고요.

Q 한복 브랜드 ‘질경이우리옷’과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한 것도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한 일환이었나요?

질경이展 Sewing Boundaries
질경이展 Sewing Boundaries

지난 2014년 3월 질경이우리옷 제5회 작가 초대전에서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잇다’라는 타이틀로 전시회를 진행했던 적이 있어요. 이후 2015년 2월 ‘천연 염색으로 가는 길’이라는 두 번째 전시회까지 가지게 됐고요. 전통적인 느낌의 기와집과 도회적인 모델, 그리고 현대 복식과 소재에 동양적인 디테일과 천연 염색을 접목해 신구의 조화를 나타냈죠.

Q 지금까지 선보였던 컬렉션 중 특별히 애착이 가는 것이 있다면?

당연히 2016 S/S 컬렉션이죠. 두말하면 잔소리에요. (웃음) 처음으로 야외에서 진행된 쇼인만큼 나름대로 신경도 많이 썼었고요. 그리고 이때 정말 많은 분들이 도와줬어요. 아마 그분들이 없었으면 못 했을 거예요.

Q 배우 김우빈이 런웨이에 올랐던데?

Sewing Boundaries 2016 S/S COLLECTION
Sewing Boundaries 2016 S/S COLLECTION

김우빈 씨하고는 어렸을 적부터 알고 지낸 사이에요. 그 친구가 모델 일을 시작했을 때 룸메이트로 지내기도 했었고요.  그때 당시에 제가 패션쇼를 진행하게 된다면 런웨이에 함께 오르기로 약속했었어요. 마침 스케줄이 잘 맞아 같이 할 수 있게 됐던 거고요.

Q 서울패션위크가 아닌 건대 커먼그라운드에서 단독 패션쇼를 기획한 이유는?

언젠가 한 번쯤은 이색적인 패션쇼를 해보고 싶었어요. 때마침 좋은 계기로 커먼그라운드에서 2016 S/S 컬렉션을 선보일 수 있게 됐었고요. 당시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관람객들이 찾아와줘서 놀라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정말 기뻤어요.

Q 2016 S/S 컬렉션을 무사히 마친 소감은?

Sewing Boundaries 2016 S/S COLLECTION / 하동호 디자이너
Sewing Boundaries 2016 S/S COLLECTION / 하동호 디자이너

제가 33년 인생을 살면서 가장 행복한 하루였던 것 같아요. 아마도 죽을 때까지 기억하지 않을까 싶네요. (웃음) 사실 제가 디자이너가 된 계기가 패션쇼를 끝내고 났을 때의 ‘희열’에 감동했기 때문이에요. 옷을 창작하고, 만들고, 또 무대 기획에 음악까지… 짧다면 짧은 15분을 위해 투자한 시간들을 한 번에 보상받는 느낌이랄까? 제가 여기까지 오게 된 이유도, 그리고 앞으로 꿈을 꾸는 이유도 이런 매력에 매료됐기 때문이에요.

Q 패션 디자이너로서 힘든 점이 있다면?

힘든 점이라… 매일매일이 힘들죠.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가 대규모로 진행되는 사업이 아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경영 시스템이나 유통적인 부분에 있어서 항상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죠. 가장 안타까울 때는 회사 사정으로 인해 특정 디자인을 포기해야 되는 순간이에요. 이런 부분들을 보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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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wing Boundaries 하동호 디자이너

Q ‘소윙바운더리스’는 어디에서 만나볼 수 있나요?

국내 오프라인 매장은 에이랜드 명동점, 믹샵 가로수길점, 디스토어 등을 통해 전개하고 있고, 국내 온라인의 경우 무신사, 29CM, W컨셉, 프라브, 레이틀리 등을 통해 만나볼 수 있어요. 해외는 중국 편집숍 D2C에 입점해 있고요.

Q ‘소윙바운더리스’가 어떤 브랜드로 자리를 잡았으면 하는지?

소윙바운더리스를 론칭한지 벌써 2년이 넘었어요.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지금까지 버틴 게 용하기도 하네요. 사람들이 그러더라고요. 3년만 버티면 잘 된다고. (웃음) 앞으로 1년이 남았네요. 남은 기간 동안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최종적인 목표가 있다면 유니섹스 브랜드에서 시계, 안경, 슈즈, 키즈 라인까지 카테고리를 확장해 토털 브랜드로 거듭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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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최근에는 ‘패션 디자이너’라는 개념이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해요. 패션 디자인 전공자뿐만 아니라 다른 전공을 했던 이들도 디자이너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됐죠. 저는 패션 디자이너라는 타이틀에 현혹돼 무작정 덤비지는 말았으면 해요.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힘든 과정이거든요. 정말로 옷에 미쳐 있고, 이거 아니면 안 되겠다 싶은 친구들이 도전해줬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Q 마지막으로 하동호 디자이너를 사랑해주는 팬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제가 만드는 옷에는 스토리가 있어요. 이번 컬렉션에는 어떤 스토리가 담겨 있을까, 어떤 디테일을 통해 표현했을까를 생각해주시고, 공감해주신다면 더 재미있는 옷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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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나

리그 오브 레전드를 즐기는 패션 에디터(__*) 1:1 신청 환영 press@fashion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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