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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인터뷰1] 1,000대1의 경쟁을 뚫은 중국 최고의 디자이너 ‘구오페이’

미혼남녀가 맞선 장소로 가장 선호한다는 강남의 한 호텔커피숍. 약속시간보다 30분 먼저 도착해 그녀를 기다렸다. 아리따운 피아니스트의 고상한 피아노 연주에 내 마음이 조금씩 들뜨기 시작했다. 설렘 때문일까, 긴장감 때문일까. 그녀를 기다리는 동안 화장실을 2번이나 왔다 갔다 하면서 옷 매무새에 신경을 썼다. 약속시간이 살짝 지나 기대감이 초조함으로 변하게 시작하려고 할 때 그녀가 화사한 미소를 띄우며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그녀의 얼굴을 사진으로는 봤지만 실물이 훨씬 아름다웠다.

자리에 앉자마자 내가 말을 건넸다. “밖이 많이 춥죠? 오늘 날씨가 영하 10도라고 하네요.” 그녀는 이정도 추위가 대수냐는 듯 “괜찮아요. 제가 살고 있는 베이징과 날씨가 비슷한걸요”라고 쿨하게 대답했다. “사실 한국에 온 게 처음인데 날씨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분위기가 베이징이랑 별로 다르지 않아서 친숙한 느낌이 들어요”라며 생긋 웃는다.

그녀의 직업은 패션디자이너다. 그것도 중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오뜨꾸띄르(Haute couture: 소수의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맞춤복)디자이너다. 이제는 고인이 됐지만 한국의 패션디자이너 하면 ‘앙드레김’이 떠올랐듯 중국에서는 그녀를 으뜸으로 꼽는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중국여배우 장쯔이, 판빙빙, 리빙빙 모두 그녀의 옷을 입었다. 중국이 그들의 힘을 세계에 알리려 야심차게 준비한 ‘2008베이징올림픽’의 공식행사 여성의상도 그녀가 제작했다. 그녀의 회사에서 근무하는 직원도 무려 450명이다. 이쯤 되면 중국에서 그녀가 갖는 위상이 대충 짐작이 된다.

“세상에서 옷 만들 때가 제일 행복해요”라고 말하며 아이처럼 웃는 구오페이(Guo Pei). 대화하는 내내 패션에 대한 그녀의 불타는 열정이 내 온몸을 휘감았다. 그녀의 이야기에 빠져들어 인터뷰를 마무리 할 때쯤 시계를 보니 2시간이 훌쩍 흘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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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리츠칼튼 더가든에서 인터뷰중인 중국 최고의 디자이너 ‘구오 페이’, 사진=김경성

 16살에 패션계에 입문해 지금은 중국 최고의 디자이너가 되셨는데요. 처음 패션계에 발을 디딘 1980년대에는 중국에서 패션이란 개념이 생소했을 것 같습니다. 또한 패션산업도 지금처럼 크지 않았고요. 이런 상황에서 왜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나요?

어렸을 때부터 예쁘게 뭔가를 만드는 걸 좋아했어요. 여자들은 그렇잖아요. 예쁘고, 아기자기하고, 나만의 무언가를 가지고 싶은 거(웃음).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걸 찾다 보니까 패션디자이너가 제 천직이더라고요.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아니 어떤 문제죠?

집안의 반대가 정말 심했었어요. 아까 말씀하셨던 대로 당시 중국에서 패션이라는 개념은 거의 없었다고 보면 됩니다. 옷에 대해 예쁘다. 안 예쁘다 라는 기준이 없다 보니 그냥 아무거나 막 입었을 때였어요. 집안에 있을 때나 외출 할 때 모두 똑 같은 옷을 입어도 누구도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하물며 결혼 할 때도 똑 같은 스타일의 옷에 색만 빨간색인 옷을 입고 했었죠. 그렇다 보니 중국사회에서 디자이너는 정말 하찮은 직업이라는 인식이 팽배했었습니다. 가족, 친척, 주변사람 모두 그 짓을 왜 하냐고 말리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그런데 어쩔 수 있나요.. 전 제가 하고 싶을 걸 해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에요. 주변의 소리보다 제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우직하게 나아갔던 거죠.

대단하시군요. 여자로서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역시 좋아하는 걸 하는 게 성공한 사람들에게 볼 수 있는 공통점 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의문이 드는 게 있습니다. 당시 패션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나 규모로 볼 때 제대로 된 패션교육을 받기도 힘들었을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제가 16살 때인 1982년에 베이징경공업학교(Beijing Second Light Industry School)에 등록해 디자인을 배우기 시작했죠. 그런데 당시에는 중국이 지금처럼 개방이 되기 전 이었어요. 그래서 서양의 선진 디자인 기술이나 문물을 접해본 선생님이 거의 전무한 상태였죠. 기껏해야 미술대학의 교수님이 오셔서 회화, 소묘, 인체구조에 대한 아주 기본적인 교육이었습니다. 교육자료도 일본, 홍콩, 한국에서 발행 된 몇 권의 책이 전부였어요. 인력도 없고 재료도 없고 정말 아무것도 없었던 시기였습니다(웃음). 체계적인 교육은 못 받았던 거죠.

세계적인 패션컨설턴트 리노 이엘루치(Lino Ieluzzi)의 인터뷰 기사가 생각이 나네요. 그는 미국의 저널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어느 대학에서 패션을 공부했냐”라는 질문에 “길거리 학과”를 나왔다고 대답했거든요. 환경보다는 하고자 하는 의지가 더 중요하다는 교훈은 어디에든 적용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나름 공부 방법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주변환경이 좋지 않다고 그 탓만 할 수는 없겠죠. 그때는 책을 많이 읽었어요. 소설책, 역사책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보면서 제 마음속으로 상상의 나래를 무한대로 펴봤습니다. 나중에 내가 좀 더 실력을 갖추면 이렇게 만들어봐야겠다라는 생각을 계속 했던 거죠. 사실 그 때는 책도 쉽게 구하기 힘든 시기였어요. 자료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했었습니다. 오히려 그랬던 환경들이 간절함으로 승화되지 않았나 싶네요. 당시의 경험들이 지금 제 작품에 많이 반영되고 있습니다.

간절함은 최고의 자료라는 말로 해석해도 될 것 같군요. 디자이너님의 작품을 보면 중국의 전통적인 면과 서구의 현대적인 면이 아주 훌륭하게 조화됐다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특히 ‘용의 전설’(Legend of the Dragon)패션쇼는 정말 웅장해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는데요.

사실 ‘용의 전설’에 선보인 작품은 실생활에서 입을 수 있는 유형의 옷은 아니죠. 디자이너 혹은 더 나아가 예술가로서 제 생각을 표현한다는 생각으로 만든 겁니다. 예를 들면 소설가는 책을 써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 내듯이 디자이너는 옷으로 표현을 하죠. 그래서 어렸을 때 읽었던 동화를 바탕으로 그 당시의 동심을 ‘용의 전설’이라는 패션쇼로 나타내고 싶었습니다. 아까도 말씀 드렸듯이 책이 이런 웅장한 쇼를 할 수 있게끔 한 원동력이 된 거라 할 수 있죠.

그럼 왜 ‘용’이었나요? ‘용’은 중국을 상징하는 동물이기도 한데요. 그 강인한 ‘용’을 여성의 옷에 주제로 삼은 건 무슨 이유였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용의 전설’ 패션쇼를 발표한 게 2012년 용의 해였어요. 아마 잘 아시겠지만 용은 지위, 권력, 재물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는 황제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앞에 열거한 여러 것들은 강한 남성을 의미하기도 하죠. 하지만 이제 중국에서는 용이 상징하는 것이 더 이상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에서는 여성도 당당하게 남성과 경쟁해 사회의 리더가 될 수 있다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여성도 용이 되어 승천 할 수 있다는 거죠. 여권신장에 용을 입힌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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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gend of the Dragon, 2012, 사진=Rose Studio

역량 있는 중국여성이 많이 나오길 바라는 것 같군요(웃음). 그럼 ‘용의 전설’에는 어떤 스토리가 담겨 있습니까?

쇼를 보면 금색 용과 흰색 용 이렇게 두 마리가 등장합니다. 화려한 금색 용은 꿈과 이상을 상징합니다. 생각해보세요. 우리 모두 어릴 적에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냉혹한 경쟁사회를 살아가다 보면 꿈이 뭐였는지,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뭔지 잊는 경우가 많이 있어요. 그렇지 않나요? 참 안타까운 현실이죠. ‘용의 전설’에서는 꿈을 향해 쉴새 없이 나아가는 금색 용이 먼저 등장합니다. 그러다 나중에는 흰색 용이 무대위로 나오게 되죠. 여기서 흰색 용의 의미는 금색 용이 꿈을 좇다가 힘이 들어 그 금색이 퇴색 되어버린 겁니다. 번쩍번쩍한 황금색이 이제는 더 이상 빛나지 않는 거죠. 즉 현실 속의 나로 되돌아 온 겁니다. 그런데 그 꿈을 포기하고 현실에만 안주 하는 건 비극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흰 용이 퇴장하면 다시 꿈을 가진 금색 용이 재등장합니다. 이상과 현실의 공존. 우리네 인생사랑 비슷하지 않나요? 아무리 힘든 현실 속에서도 꿈을 찾아가는 과정이 행복한 인생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상과 현실의 공존이라…와 닿네요. 꿈이 없이 하루하루 현실에 목 매여 살면 그 현실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꿈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 맞이하는 하루하루가 제게는 그 어떤 가치보다 소중합니다. 참 가슴에 와 닿는 스토리네요. 그렇다면 디자인을 할 때 어떤 부분에 가장 가치를 두는지요? 철학이 있다면요?

제가 약 30년 동안 패션계에서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하는 패션이라는 의미는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화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 단계에서는, 패션을 표면적으로만 이해해왔습니다. 입기 편하고 예쁘면 모든 게 만족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두 번째 단계에서는 좀 달라졌습니다. 패션이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믿었죠. 그래서 사람의 삶이나 마음을 패션을 통해서 변화 시킬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지금은 마지막 3번째 단계인데요. 새로운 디자인을 통해 스토리를 만들어내고 사람들과의 소통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어떻게 하면 좀 더 공감 가는 스토리로 사람들과 소통을 할 수 있는지 고민을 디자인에 녹여내려고 합니다.

요즘 사회에서 스토리를 참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역시 스토리는 패션에서도 빠질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자 그럼 이번에는 디자이너님을 중국국가대표로 만들어준 ‘2008베이징올림픽’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2008베이징올림픽 대표 디자이너로 선정됐을 때 느낌이 어땠나요? 특히 베이징올림픽은 중국이 국제사회에 중국이라는 용이 승천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한 전략적인 부분이 굉장히 컸었습니다. 그만큼 부담이 상당하셨을 것 같은데요.

여기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은데 이거 어디서부터 말해야 될 지 모르겠군요. 음….그래요. 여기서부터 얘기를 해보죠. 2001년 모스크바에서 2008올림픽 개최도시를 선정했고 베이징으로 결정이 됐죠. 사실 그때부터 시작이었어요. 그 때 참석했었던 중국대표단의 모든 옷을 제가 만들었습니다. 다행히도 중국이 유치성공을 했어요. 정말 날아 갈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웃음). 그런데 제가 2001년 당시 대표단의 옷을 제작했었지만, 베이징올림픽의 공식의상을 제작 할 권한이 자동으로 주어진 건 아니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서 2008베이징올림픽 디자이너로 선정됐나요? 혹시 ‘서바이벌’인가요?

하하, 그렇습니다. 중국에서 날고 기는 디자이너는 모두 선발대회에 지원을 했던 것 같아요. 아주 치열했습니다. 약 1,000명 정도 지원을 했었으니까요. 아마 그보다도 더 많았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 때 제 마음속에 들었던 생각이 뭐였나 면, 이건 내가 해야겠다. 내가 꼭 하고 말겠다. 내가 베이징사람이니까 베이징과 중국을 제일 잘 표현할 수 있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꽉 찼습니다. 9개월 동안 심사가 진행됐습니다. 처음에는 200명이 떨어지고 그 다음 또 몇 백 명이 떨어졌어요. 탈락자들이 속출하는 과정이 계속되면서 결국에는 저만 남게 된 거죠. 정말 하루하루 살아남으려고 하는 몸부림이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제가 어떻게 그 과정을 극복하고 대표 디자이너로 선정됐는지 정말 놀라워요. 심사가 모두 끝나고 나니 하늘이 노래지고, 제 능력에도 의심을 품기도 했어요. 그 때 처음 디자인 이라는 게 거대한 장벽으로 느껴졌습니다.

2001년 부터 함께 참여했다고 말씀하셔서 당연히 디자이너님이 하는 걸로 알았는데 아니었군요. 

절대 아니에요(손을 절레절레 흔들며). 정말 피 말리는 생존 경쟁이었습니다. 그런데 더 힘들었던 건 그 기간에 제가 임신까지 해버린 거죠.

뭐라고요? 임신이라고요?

네 임신이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죠. 이 중요한 시기에 임신까지 하다니. 그래도 포기 할 수는 없잖아요. 어떻게 해서 얻은 기회였는데요. 아이를 낳자마자 1주일 만에 다시 현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디자인작업을 시작했죠. 그랬더니 심사관계자들이 너 그 몸으로 진짜 할 수 있겠느냐 라고 계속 물어봤어요. 전 당연히 할 수 있다라고 했죠. 여기까지 왔는데 뭘 못하겠어요(웃음). 그런데 올림픽이 임박한 막바지에는 제 자신을 내려놨습니다.

 

Olympics - Closing Ceremony
2008 베이징올림픽 폐회식때 중국 국민 여가수 ‘쑹주잉’ 이 구오 페이(Guo Pei)의 드레스를 입은 모습, 사진=Rose Studio

내려놓다니요? 포기했다는 말입니까? 

포기라니요. 말도 안되죠. 이건 제 욕심만 가지고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동안 디자인을 할 때 제 자아를 표현하는 부분이 많았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제 자신이 아닌 중국을 세계에 알려야 한다라는 일종의 사명감 같은 게 들었던 거에요. 그래서 제 자신을 잊기로 하고 중국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게 뭔가라는 고민을 했습니다. 용과 봉황을 비롯한 중국을 상징하는 다양한 것들을 무늬로 써봤는데 뭔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고요. 결국 다 빼고 꽃무늬로 결정을 했죠.

 왜 꽃입니까? 용과 봉황이랑은 잘 조화가 안 되는데요.

성격이 급하시군요(웃음). 좋습니다. 꽃이 평화와 화합을 상징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렇잖아요. 올림픽은 전 인류의 축제인데 너무 중국다운 것 만 강조해서는 안되겠다 싶었죠. 그래서 아름다운 꽃이 제격이었습니다. 그리고 물을 거기다 채워 넣었죠. 서양에서 물은 생명을 상징합니다. 또한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 세상에 물이 없으면 생명이 존재할 수는 없겠죠. 그래서 평화를 상징하는 꽃과 생명을 상징하는 물의 조화가 제일 좋다고 생각해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제부터 옷을 볼 때는 외면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내면에 담겨있는 깊은 뜻도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잠깐 물 한잔 마시고 계속하죠.

 * 구오페이와의 인터뷰 2에서는 왜 그녀가 최고가 될 수 밖에 없었는지, 그녀가 직접 제작한 옷은 얼마인지에 대한 내용이 이어집니다. 

[글 임성민, 김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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